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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토론회] 학생인권조례활동, 성소수자 운동에 과제로 남기기

2012년 3월 22일 7시 광화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세미나실

주최: 학생인권조례성소수자공동행동

사회: 이종걸(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순서

1. 인권교육, 어떻게 준비하고 개입할 것인가

발제: 곽이경(동성애자인권연대)

토론: 한낱(인권교육센터 들)

2.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발제: 쥬리(10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토론: 리인(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퀴어뱅), 정욜(동성애자인권연대 청소년자긍심팀)

3. 섹슈얼리티 의제,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

발제: 나영(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토론: 나랑(한국성폭력상담소 열림터)

4. 성소수자 의제 제도화에 대한 평가와 전망: 학생인권조례 대응을 중심으로

발제: 타리(학생인권조례성소수자공동행동)

토론: 훈창(인권운동사랑방)

2012/03/19 10:54 2012/03/1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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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동 후기

학인

2012년 2월 26일 포이동 다녀왔습니다. 학생인권조례 투쟁장에 포이동 주민들이 맛있는 만두를 보내 주신 것 기억나시죠? 그 때의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포이동에 방문했습니다. 포이동은 주변 아파트와 높은 건물 사이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어요.

이곳이 포이동이에요. 조금은 허름했지만 정겹고, 동화처럼 예뻐 보였어요.

귀여운 강아지가 맞아주네요.

마을 가운데 있는 포이동 대책위원회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포이동에서 상근하시는 민중주거생활권쟁취를 위한 철거인연합회 박정재 연대사업 국장님과 포이동 대책위원회 위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위원장님은 몸이 안 좋으셔서 도중에 들어가시고 박정재 국장님과 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박정재 국장님이 포이동의 역사에 대한 것은 동영상 자료를 보여 주셨고, 포이동의 현재 상황은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Q. 포이동의 현재 상황은 어떤 상황인가요?

2011년 11월 8일 강남 구청과 협상을 맺었어요. 52채의 집(조립식 건물)을 짓고 입시주거 시설로 인정하기로 했어요. 단 서울시에서 개발계획이 있으면 추후 협의한다. 라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강남구청 측과 협상내용을 갖고 실랑이가 있어서 상하수도를 설치하는데도 2개월이나 걸렸고 부실공사로 가끔 터지기도 해요. 하지만 현재는 대부분의 공사가 끝났어요. 서울시가 이곳을 개발하지 전까지는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요. 그리고 입시주거 시설로 인정받아서 불법 점유자가 아니기 때문에 토지 변상금도 나오지 않게 됐습니다.

Q. 앞으로 대응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실 생각이신가요?

앞으로는 임시 주거시설이 아니라 정식 주거시설로 인정받으려 투쟁하려 해요. 그리고 마을에 사회적 기업을 만들려고 합니다. 원래 마을엔 고물상, 건재상 등이 13개 있어서 주민들이 고물을 모아서 팔기도 하고, 건축 관련된 일용직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주민들의 수입원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빠져나간 상태입니다. 그래서 마을에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달라 서울시에 제안서를 냈어요.

Q. 박원순 시장이 되고 기대되는 부분이 많은데 포이동의 사정은 많이 달라졌나요?

서울시 주거정책 자문 위원장, 보좌관을 많이 만나는데 해법이 저희와 달라요. 가격논리, 개발논리로 얘기 해요. 우리는 토지 공개념, 토지를 재태크의 수단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받아들여 지지 않아요. 이 땅의 가격의 800억인데 주민만 살게하는 것은 아깝다라고 말해요. 그리고 집이 갖는 교육권, 생활권, 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요. 거의 없어요. 주민들에게 임대주택만 주면 끝이라고 생각해요. 박원순이 시장이 되고 바뀌기는

했지만 아직 부족해요. 임대주택으로 이사를 가신 주민이 있는데 얼마전 1월 18일에 돌아가셨어요. 혼자사시는 분이었는데 낮선 곳에서 쓸쓸하게 계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알지도 못하는 주민들과 소통이 안되고,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도 없고, 혼자 사시는데 아무도 챙겨주지 않고. 그런것에 대해서 고민하시다가 술만드시다가 돌아가셨죠. 포이동처럼 수십년 동안 마을 주민들과 어울리면서 사셨던 분들은 흩어질 수가 없어요.

Q. 마을 주민들끼리 어떻게 어울리시나요?

예전엔 마을이 양재선 주변에 붕 떠있어서 마을 주민끼리 어울릴 수 밖에 없었고 놀이 문화가 그래요. 그게 상당히 오래됐죠. 주민분들은 근체 마을회관에서 고스톱도 치시기도 하고, 음식을 하시면 서로 음식을 나눠먹고 그러세요. 부침개나 겉절이, 조금이라도 색다른 음식이 있으면 나눠먹죠. 항상 열려있는 생활을 해요. 인간 사는게 그런 것 같아요.

Q. 어떨 때 차별 받았다고 느끼셨나요? 철거민이 느끼는 차별은 무엇인가요?

사람이 사람이 아닌것처럼 여겨지는 차별을 격었죠. 도시 미관을 해치는, 길거리에 나뒹구는 쓰레기처럼, 외국인이나 시민들이 보기에 보기 않좋은 흉물스러운 존재, 국가의 위신을 떨어트리는 존재로 차별을 받았죠. 아시안 게임, 올림픽 때는 주민분들을 출입을 제한하게 하려고 경찰들이 2명 상주 했어요. 집단 수용소처럼 출입을 다 체크했죠. 그것이 가장 큰 차별이라고 느껴지네요.

박재정 국장님께 개인적인 질문도 드렸습니다.

Q. 철거민이 아니신데 왜 철거민 운동을 하시나요?

저는 철거민이 아니라고 할 수 없어요. 항상 이사를 가야되고, 철거민의 주거공간과 제가 살고 있는 주거공간이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전 철거민들만을 위한 운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과 주거 공간을 어떻게 쓸 것이냐? 땅은 모두에게 권리가 있는 것인데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주인이 따로 있어야 되는냐?’에 대한 투쟁을 하고 있어요. ‘땅을 사고 파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사람이 행복해 지도록 하자!’ 하는 투쟁을 하는 거죠. 주거와 땅에 대한 차별이 없어져야 하는데 이런 차별을 가장 많이

받는 분들이 철거민들이에요. 그래서 철거민들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운동을 하죠. 우리나라엔 한 사람이 8000채를 집을 소유한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주택의 보급율은 130%이지만 세입자가 80%가 넘죠. 이상한 나라죠.

Q. 포이동과는 어떤 인연으로 시작하셨나요?

2005년 포이동의 법률상담을 했습니다. “법률적으론 절대 죽어도 못 이깁니다.”라고 위원장님께 말씀 드렸어요. 매우 실망하시고 돌아가시는데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혼자서 마을을 방문하고 학생운동 했던 것처럼 주민들과 같이 이것 저것 했어요. 그러다가 2006년말에 단체에 들어와 투쟁하게 됐습니다.

Q. 마지막으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나요?

전 이 문제와 관련 된 경험을 가지고 있어요. 2살 아래의 친구 동생이 있었어요. 어릴 때 부터 아주 친하게 지냈는데... 이 녀석이 요리하고, 화장품 찍어바르는 것을 좋아하는 거에요. 그려러니 했는데 고등학교 되자 마자 이태원을 가더라고요. 그게 1987년이었는데... 그 친구가 트랜스젠더 1세대에요. 사실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어요. 그래서 고등학생 시절에 그 친구를 잡는다고 이태원을 많이 돌아다녔죠.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면서 그 친구를 보고 생활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해하게 됬어요. ‘그것이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것이구나.’ 생각하게 되면서 이해하게 됬죠. 그것은 권리이고 스스로의 표현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소수자에 대해서 인정하고 지지 하고 싶습니다.

2시간여 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좋은 이야기 많이 해주셨는데 다 적기 못해서 아쉽네요.

이야기를 다 하고 오리가 마지막으로 후원금을 전달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주거와 땅, 공동체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재밌는 시간이었어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포이동 마을을 떠났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연대한바퀴는 지속될 예정이어요. 다만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이 아니라 <동성애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가 주관할 거예요. 어찌되었든 함께해요~

2012/03/09 23:41 2012/03/09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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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과 손잡는 성소수자 연대한바퀴

<여의도 오큐파이 후기>

_달꿈, 이경

2월 9일 여의도 오큐파이 농성장에 다녀왔어요.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농성장에 여의도 오큐파이에 참여하시는 분이 찾아와 주셨죠. 그때 따뜻한 음료를 전해주고 가셨어요.

당시 따뜻한 음료를 마시며 우리보다 더 춥고 열악한 곳에서 농성을 하시는 여의도 오큐파이분들께

감사했던 기억이 모락모락 납니다.

그 기억을 고스란히 마음에 담아서 찾아간 여의도 오큐파이 농성장!

매일 촛불집회가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저녁시간에 맞춰7시즈음 여의도역에서 모여서 함께

이동했는데! 뜨아, 이게 웬일! 집회는 저녁이 아닌 오후에 한다는 사실! 아쉽게 집회는 놓쳤지만, 농성장

텐트 안에서 너덧명의 일일 농성 참여자들이 오기까지 홀로 여의도 오큐파이에서 텐트를 우직하게

지키고 있는 대학생사람연대(대사람) 재의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답니다.

텐트 안은 아늑하고 좋았어요. 저희가 사람이 좀 많아서 비좁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죄송하기도 했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고 가니 금방 친해진 듯, 텐트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짜잔! 성소수자공동행동의 야심찬 코너 <궁금해요, 여의도 오큐파이!> 내용을 공개합니다!

Q. 여기에는 어느 정도 농성자들이 있나요? 유지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저 말고도, 다른 학교 학생들이 오늘도 자러 와요. 네명 정도가 오늘 더 올거예요.

전기는 발전기 돌려서 때우지요. 겨우 전기장판 등으로 하룻밤 추위를 피하려면 하룻밤에 4만원

정도의 기름값이 들지요. 후원금으로 발전기를 돌려요.

Q. 활동을 하면서 언제 가장 이곳을 점령! 했다는 느낌이었나요?

- 12월 28일 집회때, 포이동 현장 활동을 가 있다가 오큐파이 집회에 왔어요. 함께 한 사람들도 많았고,

그날은 경찰들이 텐트를 무너뜨리고 진압을 했어도, 왠지 기억에 남아요. 어려움을 뚫고 점령한

기분이었죠. 12월 11일 월가 점령의 날에도 우리도 점령했어요. 이 날도 경찰과 세게 부딪쳤지요.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화되었지만 한동안 늘 텐트를 유지하는 것이 불안했던 때가 있었어요. 결국

지금은 텐트 두 동을 세우는 것으로 경찰과 농성장들이 서로 합의를 본 듯 해요.

Q. 여의도 오큐파이를 시작한 것이 후회되었던 순간이 있는지 궁금해요.

- 거의 후회되는 건 없어요, 하지만 3% 정도 후회되는게 있다면 겨울이라 추위가 너무 심하다는 것!

Q. 눈에 보이는 목표가 없다는 것이 힘들지 않나요? 성소수자들도 서울시의회에서 농성을 했지만 그건

학생인권조례를 무사히 통과시킨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어서 목표가 달성되면 농성을 끝내면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 물론 그렇긴 하죠. ‘월가를 점령하라’ ‘금융을 통제하라’ 이런 큰 슬로건, (어쩌면 ‘자본주의의

광기를 멈춰라’ 이런 것일수도...)이니까요. 실제로 보면 슬로건에 구체적 요구안들을 덧붙이면서

실질화시키고 있어요. 물론 이 운동은 1%가 세상을 점령한 현실을 상징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3월에는 요구안을 만들어 홍보할 생각이에요. 오큐파이가 반값 등록금이나 실업문제를

연결하고 있는 만큼 20대의 요구를 만들어 총선에 요구안을 제출할 거에요. 99%운동에 동참하는

20대들은 (빚없고, 실업상태에 빠지지 않고)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래요.

Q. 요즘 총선을 앞두고 보수, 진보 정당을 막론하고 청년문제 해결에 대한 이야기는 꼭 하잖아요.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이런 정당이 제안하는 공약들이 바로 현실화되느냐? 그렇지 않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20대가 스스로

정치세력화하는 것입니다. 오큐파이 대학생 본부가 있는 까닭이죠.

Q.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실 건지 궁금해요.

- 반값 등록금 요구가 거세지고 청년 실업이나 사회적 고통이 커지는 상황-에서 우리가 뭔가 해야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죠. 20대가 사는 삶의 조건, 그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으니까요!

다시 얘기하면, 등록금 인하되어도 실업 문제 해결 안되면 20대의 삶이 다 해결되었다고 볼 수

없잖아요. 결국 등록금이건 실업이건 상호적이고 결부된 문제이죠.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동시에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큐파이는 어쩌면 삶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청년들이 삶을 걸고 시작한 점령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청년을 대표하는 후보를 뽑는다고, 청년세대를 위한 공약을

제시한다고 보수정당부터 진보정당까지 한결같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는 이 시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년세대의 직접행동일 것 같아요.

인터뷰가 끝날 즈음, 여의도 오큐파이에 함께 연대하러 온 네명의 친구들과 함께 따뜻한 국밥을 먹으러

갔어요. 국밥과 함께 모주도 함께 마셨지요. 농성참여자들 중에는 성소수자 서울시의회 농성장에

연대하러 왔거나 우리 집회에 참여한 분들도 있었죠. 뭔가 반가운 친구네 집을 방문한 기분이기도

하고, 오랜 친구를 만난 듯 기쁘고 반가웠어요.

끝으로 라디오스타식 질문으로 마무리!

당신에게 차별이란?

김재의: 작년에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노동자가 분신했을 때 병원에서 들었던 이야기인데요, 정규직은
왼쪽 바퀴를 만들고, 비정규직은 오른쪽 바퀴를 만들고 임금과 처우가 다르고, 언제 짤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이게 대표적인 차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런 차별들을 통해서 1%가
나머지 99%를 분리하고, 같은 사람인데 마치 다른 이해를 가진 것처럼 포장하고 그렇게 지배를 하는
모습들이 문제라고 생각해서 농성하고 있어요.

한현선: 이게 차별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느끼는 걸 이야기하자면요. 운동권에 대한 차별이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생각에 치우쳐서 이곳에 온다고 생각하고, 나를 다르게 취급하는 것 같더라구요.
내 앞에선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고성아: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면 담임선생님의 성적에 의한 차별이 생각나요. 공부를 잘 하는 것과
못하는 것에 따라서 차별을 받았던 것 같아요.

갑작스런 질문이였기도 하지만 개인에 따라서는 ‘차별’이란 단어가 왠지 자기 자신과는 멀어져

보이기도 하고, 절대적이고 무거운 것만이 차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하지만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것은 우리 모두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공유한다는 것이예요. 그래서 함께

공감할 수 있고, 또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 이겠지요.

여의도 오큐파이는 3월이 되면 시청으로 장소를 옮길 예정이라고 해요. 그때도 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요! 그래서 마지막 인사는 “또 만나요!”

*성소수자 연대한바퀴 다음 일정은 2월 26일 (일) 오후 2시 포이동 입니다!
*연락은 오리 010-3255-구이이륙 @duckorii
*후원계좌 국민은행 644201-01-294809 (최윤정)

2012/02/21 23:27 2012/02/21 23:27